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문단 편집) === [[독소전쟁]] === || [[파일:external/russiapedia.rt.com/kliment-voroshilov_4-t.jpg|width=100%]] || || [[독소전쟁]] 당시의 보로실로프 || 이렇게 겨울전쟁에서 과를 범한 보로실로프는 [[1941년]] [[독일 국방군]]의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기용되어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레닌그라드]] 방위사령관을 맡게 되었다. [[빌헬름 리터 폰 레프]] 원수가 지휘하는 독일 북부집단군은 순식간에 [[발트 3국]]을 거쳐 레닌그라드로 쇄도했다. 보로실로프는 어떤 때는 스스로 [[권총]]을 빼들고 진두에 서서 독일군 전차 부대의 공격에 대한 반격을 지휘하는 용맹을 보이기도 했으나 작전 지도에 있어 [[총체적 난국]]을 보였다.[* 당연하지만 현장 최고 지휘관인 사령관이 직접 전투에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은 좋은 상황이 아니다.] 그 결과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고 소련 제 2의 도시였던 레닌그라드가 함락 직전에 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람은 군사적으로 무학이었으니. 레닌그라드가 위기에 처하자 스탈린은 보다못해 보로실로프를 해임하고 당시 자신과의 의견 충돌로 [[총참모장]]에서 해임된 [[게오르기 주코프]]를 파견하였다. 주코프가 사령부에 나타나자 보로실로프는 그제서야 자신의 해임을 알았고, 주코프에게 지휘권을 넘겨주면서 "내가 싸우던 방식으로는 지휘하기엔 전쟁이 너무나 달라졌다." 고 솔직히 자신의 부적합을 인정했다. 그리고 레닌그라드는 주코프의 지휘로 인해 1944년까지 버틸 수 있었고 레닌그라드 공방전은 소련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스탈린은 이번에도 보로실로프를 용서했고 보로실로프는 이후에는 일선 지휘를 맡지 않고 후방 근무를 하다가 종전을 맞았다. 1945-1947년에는 [[헝가리 인민공화국]] 수립을 지휘했다. 하지만 보로실로프에 대한 스탈린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그는 명목상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서 대부분 배제되었다. 스탈린은 그가 영국 간첩이라는 의심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보로실로프를 연회 초대에 배제하면서 전후 시점에서는 흐루쇼프, 말렌코프, 베리야에 밀려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